2009년 8월 29일 토요일

나와의 대화

최근에 가장 잊고 지낸 벗에게 말을 걸어 봤다.

너무도 오랜만이라 잊고 지낸거 아닌지 안부가 걱정 되어

말을 걸어보았는데 무척히나 반겨 주었다.

 

칭찬에 제법 만족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흐믓해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소홀하진 않았는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상처가 난 녀석도 있으며 아직 괜찮은 모습으로

그대로 있어준 녀석도 있다.

 

나에게 나의 안부를 묻는다는게 가장 쉬워 보이지만

너무도 당연해서 잊을 수 있는 가족과 같은게 바로

나인게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소중히 해야 남도 소중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동안 나를 소홀히 하여 괜찮았음에도 불구하고

멋진 녀석들도 제가치를 발휘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든다.

 

주워 듣는데 명수인 나에게 주워 들은 얘기로는

내 자신은 누구보다도 든든한 후원자이며

자신감을 낼 수 있는 원천이라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적극적이지 못하고 긍정적이지 못하는 나에게

나 자신에게 그렇게 관대하지도 않았으며

함부로 대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상처도 있음에도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있어준

몸에도 감사하고 거울속에 바라본 내모습에 끊임 없는

응원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주 말을 건내며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조언을 들어보고 반성도 해보고

나와의 대화를 자주 건내봐야 하겠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식해 치장한 내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소중한 나이므로 그렇게 하도록 하자.

 

 

2009년 8월 24일 월요일

꿈속의 가면

이번엔 망상이 아닌 일장춘몽이다.

자다가 일어나보니 몇번이가 꾸었던 내용의 꿈이였다.

깨어나니 기억은 잘 안나지만

분명 우연히 가면에 대한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어머니에게서 개가 아닌 게를 애완동물로

이웃집에서 받게 되었고 그것을 정말로 소중히하게 되었고

 

그러던 찰나에 자신의 애완동물인 게와 담겨있었던 모양의

상자를 발견하고 주워왔다.

 

그 상자 안에서는 가면이 나왔는데

게모양의 무엇과도 같았는데 꺼림직하여

바로 상자를 닫고 방 어딘가에 쳐박아 둔다.

 

그러던 어느날 호기심 많은 동생이 오빠의

애와동물인 게를 보려고 방에서 그상자를 보게 되고

그상자를 연 순간 가면이 보았는데 그 가면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얼굴에 착 달라 붙었다.

 

이윽고 동생은 다른사람이 되어 있었고

오빠는 동생을 원래대로 돌려 보내기 위해 대책을 강구하지만

 

나라에서 어떤 무리를 처단하려고 하는데 거기서 예언의 가면의 사나이

가 있었는데 그게 변해버린 동생의 가면이었다.

 

대략 동생과 오빠는 합심하여 무리를 무찌르게 되는데

그나라의 공주는 그 가면을 통해 깃들어진 영혼의 누군가를 알고 있는 듯한 눈치여서

가면을 통해 전설의 영웅을 깨우게 되고..........

 

참으로 마스크 틱하면서 영웅물 짬뽕에 뭔지 모를 내용이다.

 

분명히 예전에도 꾼 기억이 있는데 왜 이런 내용의 꿈을 꾼것인지는 모르겠다.

 

 

최악의 휴가

다들 바다다 계곡이다 어딘가로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피해

어디로든 휴가를 간다.

휴가는 내가 재충전하여 다시 하던일에

의욕이 넘치도록 하는 계기와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도 휴가를 다녀왔다.

특별히 어디 다녀온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재미있어서 꽤 유쾌하게 보낸 것도 아니였다.

그래도 일에 구애받지 않고 다녀왔기에 거기에 만족을 느끼며

일상에 돌아와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회사의 이사님 휴가 차례가 왔기에

약간은 부러웠다. 아직은 내가 가보지 못한 일본이기에

더욱더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회사를 출근해 보니 아직 휴가 중이실 이사님이

출근을 한것이 아닌가?

이것은 무슨 조화이더냐?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셔서 오셨나

걱정이 되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같이 가자고 한 선배의 무대뽀에 실망하여

공항에서 검문검색을 하여 비행기까지 탈뻔하다 내리고

김새고 돌아와서 화를 안고 주말을 보내셨닥 한다.

 

나도 아는 분이기에 화끈한 성격의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선배랑 같이 가자는 말에 이사님은 같이 티켓을 끊었고

전날까지 내일 가는 얘기를 서로 주고 받았다가

중간에 일본에 들른 여자친구를 잠깐 보게 될거라고

귀뜸하였다고 하는데 당일 날 되고 보니 여자친구가 인천공항에서

바로 나오고 티켓구하느라 힘이 들었다고 하며

이사님은 아는체도 하지 않은채 비행기 탑승을 했다고 한다.

 

분명 같이 가자고 한건 이사님과 선배인데 왜 선배와 여자친구가 둘이

희희낙낙하며 여행을 같이 해야하고 거기에 꼽사리가 아닌 꼽사리를 껴야하는

이사님이 되어야 했느냐라는 정말 경우 없는 처사에 대해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십몇년을 알고 지내온 이사님을 내팽개 치고 장래약속도 하지 않는 곧 헤어질 여자에게

성심을 다하는 그분의 자세에서 너무나 실망을 했고, 그전에도 자주 이런식으로 약속을

깬적이 많아 어이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이번에는 여행인데 그것도 해외여행이고 공항에서 티켓까지 끊고 비행기 탑승 바로전

이였는데 꼭 그렇게 까지 해야했나 싶다. 양해를 구하고 여자친구가 징징대서 하는 수 없이

같이 가게 되었다. 라는 말이라도 해줬으면 그냥 기분 좋게 따로 가자고 하고 말았을 텐데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거짓말이 들통나버리니 오히려 화를 내며 공항에서 사람들 다 쳐다볼

정도로 크게 호통을 치다니 나도 정말 이해가 안갔다. 당사자는 오죽 했을까?

 

억울한 이사님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달래드릴 방도도 없고 정말 똥 밟으신 거라 생각하고

잊으시면 좋겠다. 정말 최악의 휴가를 보내신 이사님에게 행운을 빌어본다.

2009년 8월 21일 금요일

바람에 스치는 것

바람에 그져 스쳐 지나가는 것에 불과 했는지도 모른다.

 

여름은 끝나가고 이제 가을이 오는데

 

내님은 오질 않으니 적잖이 마음이 삼삼하다.

 

 

가을바람에 스쳐도 좋으니 내님은 어서 오시오

 

나 그대에게 마음을 활짝 열으리다.

 

바람에 스치는 갈대가 되어 줄 내님 어서 내게

2009년 8월 19일 수요일

비와 눈물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햇님이 있었어
햇님이 보기엔 작아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그사람들의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거든

그러던 어느날 사람들이 흘린 눈물을 본 햇님은
자신의 불행인냥 슬픔을 견딜 수가 없었어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햇님은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로
눈물이 마르도록 내리쬐는 일을 하였지
어느 때보다 빨리 마르도록 말이야

우연히 떠돌던 나그네 먼지들은 그 모습에 감동하고
흩어지려는 마른 눈물들을 붙잡아
점점크게 구름을 만들었어

구름이 더이상 눈물을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리면
그때마다 하늘 아래로 내려보내게 된거야.
사람들은 그것을 비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지금은 우리가 잘 모르지만 몸에서는 그 흔적을 알 수 있어
비가 오는 날 우리는 슬픔을 많이 느끼고
햇님을 대신하여 누군가를 생각하게 된거야
그래서 비와 눈물은 닮을 수 밖에 없어.

2009년 8월 17일 월요일

위대한 개츠비

전부터 생각해 본 거지만

내가 닮고 싶은 소설속 인물이 있다.

이소설을 제대로 읽어본적이 없지만

명작에게 길을 묻다라는 책의 첫장에서

소개되어 알게 되었다.

 

줄거리는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지만

가난한 자신이기에 더 많은 부호를 누리고 다시 찾아

가지만 여자는 이미 가난한 시절의 개츠비보다

잘사는 누군가와 결혼을 하였다.

하지만 여자는 그의 재산에만 매료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교통사고로 사람을 치게 되는 여자를 대신하여

자기가 죄를 뒤집어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개츠비지만

뒤에서 여자와 여자의 남편은 계략을 세우고

개츠비는 결국 총에 맞아 죽고 만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여자마저도 오지 않는 쓸쓸하고 씁쓸한 죽음으로 세상과 헤어진다.

 

또 비슷한 사랑의 관념을 알게 해주는

청춘불패라는 책속에서 이외수씨는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30년이 걸리도록

멋진 다이아몬드를 세공하여 자신의 목숨과 같은

세월을 그녀를 위해 그 긴세월을 참아내고

결국 그녀와 행복하게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누가 뭐라고 하든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는 사랑일지라도

자기 목숨을 받쳐 아깝지 않을 그런 사랑이 아니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리라. 아니 시작도 해서는 안된다.

이미 시작되었다면 그것을 위해 끝이 보여도 가보는게 사랑이리라.

위대한 개츠비처럼...

 

 

 

 

불만족

끊인없이 몸을 놀려야 한다.

게으름으로 무장되기전에

틈을 주어서는 안된다.

 

엉덩이를 바닥에 붙일 생각을 하지 말자.

안주해버리려는 생각을 뜯어 고쳐야 한다.

너무도 편한 환경에 젖어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바보같은게 어디있을까.

 

지금은 나를 채찍질하고 정신차릴때

나의 부족함을 알고 당당히 앞으로 가자

제자리걸음은 이제 그만

2009년 8월 14일 금요일

작은 공간

언제부터인지 공간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좁은 방구석에 살기도 하며 넓은 사무실을 쓰기도 해서

참으로 공간이라 것은 삶에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딜가든지 우리는 공간안에 살고 있다.

집,가게,회사등 살며서 많은 공간안에 살고 있고

공간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인터넷이 생기면서 가상공간에도 살기 시작했다.

ID하나로 내집마련의 꿈을 이루고

 전세계 모두를 만날수도 있게 되었다.

 

공간이란 어디를 가든 존재하는 공기 같은 것이다.

하지만 공기와 다른 점은 내가 나일 수 있고 네가 너일 수 있는

경계가 있다는 점이다. 피아식별을 이 경계로

알 수 있다.

 

이 경계는 작을 수도 클수도 있어

장소와 쓰임새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경계는 커가면서 알 수 있는데 처음으로 마주하는 것은 방이다.

누구든지 커가면서 형제가 있다면, 가족이 있다면

나의 독립적인 공간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공간이 생기면 애착을 가지며

허락이라는 개념으로 그방을 드나들 수 있게된다.

방이 커지면 집이되고 집이 많아지면 동이되고,

구가되고, 시가 되고,  나라가 된다.

 

각자의 공간은 사람들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큰것을 좋아하는 사람

정신적 풍요로움으로 작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

 

가상공간을 보자면 작은집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작음에도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

오히려 이것은 작기 때문에 그것의 인기는 더해간다.

일기장처럼 사진첩처럼 방명록 처럼 작은 것의 집합소이다.

작은 공간에서 오는 친숙함과 유대감은 사람들을 돈독하게 해준다.

 

큰것보다 작은데서 오는 유대감은 어렸을적 친구들끼리 우산을 모아서

작은 공간을 만들었을 때 한뜩 부풀어 올라왔던 우리네 어린시절과 다를 바 없다.

아니 그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그때로 가고 싶은 것이다.

 

공간은 내가 짊어지고 있는 공간도 있다.

어디 공간이 눈으로 보이는 것만 공간이겠는가?

보이지 않아도 다들 마음속에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희노애락을 느끼며 살아간다.

작은 공간이라고 생각 될 수 있다.

인간의 크기가 보통 2미터를 넘지 못하니까

눈에 보이는 것은 그게 다라고 착각 할수 있다.

 

그런데 이공간이 작기때문에 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을까?

설사 작더라고 크게 만들 수 있다고 꿈꿀수도 있지 않은가?

무릇 사람이란 마음의 그릇이 커야 된다고 한다. 그릇도 무엇을 담는 공간이기에

담을 수 있는 공간의 크기는 확장이 가능하고 꾸미기 나름이다.

 

나 자신이 작기 때문에 큰 꿈을 갖게 되고

내가 아니고 우리를 원한다. 하나에서 둘이 되는 사랑을 말이다.

작은 공간에서 오가는 친숙함과 낯선공간에서 오는 호기심은

둘의 사이를 돈독하게 한다.

 

그래서 요즘드는 생각은 나는 몸도 작고 방도 작고 마음도 작지만

커야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고 그공간이 우리라는 작은 공간이면

참 좋겠다.

 

 

2009년 8월 11일 화요일

유년기 시절 책을 읽으면서 몰입을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없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 단편적으로 읽었고, 그냥 사전적 의미로만 읽게 되었다.

소설을 읽자면 그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 공감 이런것을 느끼지 않고
흘려 읽은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잡지에서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다가 문득 학창시절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당시 그냥 소녀가 가여웠다는 느낌만 가지고 있었는데
다시 실려있는 일부분의 내용을 읽어 보니 상황묘사와 주인공의 심정을 더 잘 아는 느낌이다.

전의 나와 다르게 10년 이상의 경험을 쌓고 책을 읽는 나의 방식와 받아들이는 양이 그만큼  늘었겠지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지고 알지 못했던 내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 그것이야말로 독서라고 생각된다.
지금 그래서 내가 책을 읽는 좋은 이유가 된 것 같다.


2009년 8월 9일 일요일

사진기

사진기에 대한 울렁증이 있다.

찍힌다 생각되면 나도 모르게 굳어버리는 이 안면근육들은 일동차렷을 한다.

또는 부끄러운 나의 눈은 사진기 렌즈와 마주하기를 거부하는지 감기가 일쑤였다.

 

어렸을 때는 그냥 모르고 그냥 '여기 쳐다봐야지'하고 그냥 고개만 돌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처럼 어색하거나 그런건 없다. 물론 웃거나 하는 건 없지만 말이다.

 

사진에 대한 나의 부자연스러움에 어떤 친구는 나를 몰래 찍곤 했고 그때야 비로소

웃음기 머금은 나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잘 웃을거면서 왜 그렇게 사진기만 보면

얼어버리냐는 친구의 말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도망가는 것 때문일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였다.

 

이런 부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진기와 친구가 되었다.

나와 마주한 것들을 담기 위해 찰칵찰칵 수도 없이 눈짓을 교환했다.

맛있는 음식 앞에, 자랑스러운 친구 앞에, 탐스러운 자연 앞에 말이다.

 

숫자식 사진기가 존재 하지 않았을 때 일회용 사진기,수동 사진기는

소풍, 생일, 잔치 등 기쁨의 순간 함께한 누군가를 찍었지만

지금은 내가 있는 장소에서 나를 찍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그건 나에게 있어 부러움의 대상이며 다른 세계의 일이지만 말이다.

 

사진기는 순간을 기록하기도 하며 그때의 감정을 기록한다.

 

순간의 기록은 내가 어디에 무엇을 했는지 시간별로 나열해주는

일종의 보조기억장치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사진들이 수도 없이

어느장소에나 찍히곤 한다. 물론 나도 그런것 들이 상당 수 있다.

기억력이 내가 관심에 둔 것 외에는 좋지 못해 다시 기억 하게 해주는데

도움이 되기에 장소가 바뀌거나 먹는 것이 바뀌면 그걸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그렇게 많은 것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 순간에 10장이 찍힌들 감정이 열개의 감정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은 무분별하게 찍히면 내가 어떤 것을 느꼇는지 마음으로 보지않고

눈으로 보게된다. 많은게 무조건 좋은 건 없는 것처럼 사진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많은 사진 중 그때 함께한 사람과의 사진은 없고 달랑 두장의 사물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거기에는 누구도 담겨있지 않고 그때의 사물들만이 자리에 있다.

그게 난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누굴 찍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사진에 대한 울렁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찍히는걸 싫어하는

친구이기에 애써 사물들만 가득한 두장의 사진뿐이다.

 

나의 울렁증에서 시작한 사진기에 대한 생각은

이렇게 다른 사람의 울렁증(?)으로 마무리 하게 된다.

수는 중요치 않지만 아쉬움이 남는게 사진이여

순간의 기록이지만 감정이 기록되지 않는다면 없어져 버릴 사진이여

그래서 사진은 아쉬움이고 사진기는 내 자신이다.

 

내일도 나는 아쉬움을 찍기위해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차렷자세로 이세상과 마주하며 눈짓을 보낸다.

2009년 8월 2일 일요일

성숙한 청춘

그래 오늘 나는 '청춘을 위해서' 부단히도 외쳤다.

친구가 사랑에 심하게 데이기도 하였으며, 그의 직업을 얕잡아 봤기 때문이다.

내얘기를 하며 친구를 위로했지만 그친구는 오히려 날 위로했다고나 할까?

 

내가 사랑을 하면 얼마나 해봤고 사람을 알면 얼마나 알겠나?

이친구 앞에서는 내가 좀 작아짐을 느꼈다.

누가 누구를 비난할 권리를 없다고 했다.

넌 이래서 나빠, 넌 저래서 싫어.

망상가가 되어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고,

자신이 준것에 대한 기대한것 이하의 받음에 오는 실망감

으로 상처를 입고

내가 아님에 누굴 그렇게 욕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했다.

 

'모든 문제는 자신에게 있으며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언제나 한결같은 그친구의 생각이다.

상처입히는 것에 대한 친구의 철두철미한 방어태세는 참 놀라울 정도다.

'너무 자신을 타박하는 거 아니겠냐'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누굴 사랑할거라고 생각지 않는

친구의 생각에 수긍이 가며 나또한 누구를 비난하거나,

욕을 했던 것은 아니였나 생각해 보았다.

 

지금 우리가 아파하고 방황하는 것은 청춘이다.

절망할 것도 없으며, 조급해 할 것도 없다.

청춘이기에 용서가 되는 시련의 과정들일 뿐이다.

꽤 성숙한 청춘이 된 그친구에게 다시 찾아올 사랑과

언제고 그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길 빌어본다.